2022년 상반기 회고
올해는 상반기가 무척 바빴습니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주로 이직 때문이었어요.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나서 대략 6개월 정도가 걸렸던 것 같네요. 그래서 이번 회고는 주로 이직 준비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직동기
이직을 어쩌다가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면접을 보는 내내 들었던 질문이고, 저는 나름대로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팀원들에 대한 불만
같이 일하는 팀원 중에 제대로프론트엔드 개발자
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어떠한 자극을 받거나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계속 혼자서 연구하고 공부를 해왔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좀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고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다든지 힌트를 얻는다든지 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계속해서 혼자서 공부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좋은 환경에 있는 개발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기술을 계속해서 팔로업해야 하고... 조금 지쳐있었습니다.적은 연봉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개발자 연봉이 화두에 오르고 많은 신규 인력의 유입이 있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렇게 돈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동일 연차에 있는 다른 개발자들과 연봉 이야기를 하면서 들어온 연봉과 제 연봉이 생각보다 차이가 좀 있어서 연봉협상에서 조금 과감하게 제시했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조정이 있기는 했지만 제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올려서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조금 아쉬운 금액이었습니다. 최고의 복지는 결국 연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회사로 이직하든, 저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직전 연봉의 기준은 대개 '계약 연봉'이니까요.마인드셋 재정비
게다가 회사에서 저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도로 디자이너가 없었기 때문에 UI/UX에 대한 고민을 오롯이 제가 해야 했는데, 저의 고민이 담긴 결과물에 대해서논리적이고 합당하지 않은 이유
로 비판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제 주장에 대해서 적어도 근거가 될만한 자료들을 찾아서 인용하며 주장을 했는데, 상대방은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내 마음에 안 든다'라는 이유로 딴지를 걸었거든요. 결국에 제가 강단 있게 밀어붙여서 기존상태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그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굉장히 불쾌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다음부터는 그냥 불만이 들어오면 수동적으로 수정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지내게 되면 저는 패배주의에 젖어서 성장동력을 상실할 것 같은 공포심이 생겼습니다. 그 감정은 두려움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뚜렷한 공포감이었습니다. 1번과 2번 이유보다도 이것이 저에게 가장 큰 이직동기가 되었습니다.
이직 과정
이직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력서는 평소에 정리해 놓자
와 이력서는 일정을 고려해서 넣자
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일을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 이력서에 맥락 없이 쑤셔넣을 수도 없고, 잘 정리해서 넣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열심히 정리한 덕분에 이번에는 서류 탈락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 그리고 저는 어쩐지 이력서를 많은 곳에 한 번에 넣는 게 좀 무섭습니다. 여기저기 한 번에 연락이 오고 그러면 면접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이것저것 재고 따져야 하는데 그런 것에 저는 별로 특기가 없거든요. 태생적으로 쫄보라서 연봉 핑퐁도 잘하지 못하는 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이력서는 무조건 많이 넣으세요. 단, 본인의 체력 및 정신력을 고려해서요.
이번 이직 과정 중에서는 대략 15개 기업과 컨택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력서를 넣은 곳이 10곳, 헤드헌터로부터 제안받은 곳이 4곳, 지인에게 추천받은 곳이 1곳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기억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들만 추리면 대략 아래와 같을 것 같네요. 문제가 될 수 있어서 구체적인 기업명을 언급하지는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A기업
아마 이름을 말하면 모두들 아실만한 규모의 기업입니다. 본격적으로 이직을 마음먹은 당일에 공고 마감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약 세 시간 만에 접수를 완료한 곳입니다. 정말 후루룩 적어서 냈는데요, 합격이라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번 이직 중에서 면접이 까다롭기로는 단연 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형은 총 3차였는데요,서류 - 1차 전화 - 2차 기술 - 3차 HR
의 순서였습니다. 나름대로는 답변을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2차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조금 아쉽긴 했어요.B기업
이곳 역시 많이들 아실만 한 규모의 기업인데요, 이 곳도 조금 아쉽습니다. 1번에서 언급한 기업의 면접이 끝난 바로 다음 날 과제 전형이 있었거든요. 약 3~4시간 안에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부분이었는데, 전날 면접의 영향으로 아예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아침에 목소리도 제대로 안나올 정도였거든요. 그러다보니 컨디션이 완전 최악이라서 퍼포먼스가 평소의 10%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어요. 조금만 더 여유가 있게 지원을 했더라면 좋은 결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C기업
여기도 많은 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이 원하는 규모의 기업입니다. 사실 저는 따로 코테를 준비한 적이 없어서 이곳에서 보는 코테가 굉장히 낯설었는데요, 정말 복잡한 정도의 알고리즘이 나왔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았던 걸까 잘 모르겠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에게도 물론 알고리즘이 중요하지만 정말로 이 정도 수준의 알고리즘이 필요했던 걸까 하는 의구심은 좀 남습니다. 프로그래머스를 통해서 진행됐고 점수는 나쁘지 않았는데 아마 시간복잡도나 공간복잡도에서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D기업
제가 E기업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기업입니다. 여러 가지 복지나 연봉적인 면에서도 만족스러웠고, 회사의 문화적인 면에서도 다른 기업들보다 괜찮아 보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전 직장에서 가장 목말랐던 부분인, 팀원들이 많았다는 점과 모두 열정을 가지고 업무를 대한다는 면에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수평 지향적인 개발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결국 제가 최종 입사를 거절하게 되어 실제로 어떤지 여부는 알 수 없겠지만 면접 전형이나 프로세스가 가장 탄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해당 조직에 필요한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만약 E기업이 없었다면 현재 다니는 직장이 이곳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E기업
현재 다니고 있는 기업입니다. 지인의 추천을 통해서 채용 전형을 진행하게 되었고요, 이곳은 다른 전형들보다 컬쳐핏이 매우 빡셌습니다.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를 매우 심도 깊게 물어봤습니다. 어땠을 때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 그걸 위해서 회사가 어디까지 지원해주길 원하는지, 협업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만일 그게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퍼포먼스를 끌어올릴 것인지 등의 정답이 없는 질문들 위주로 이어졌습니다. 중간마다 이전에 물어본 질문을 비틀어서 검증하는 것 같은 질문들도 있었는데, 평소에 스스로에 대해서 깊게 탐구해보지 않았다면 검증 질문에서 탈락하게 되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면접을 본 모든 구성원의 만장일치로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더라구요.
후기
뭔가 올해 상반기 회고는 이직에 대한 기록이 된 것 같네요. 이직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느꼈던 느낌에 관해서 서술하자면,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코테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코테가 미니멈을 거르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자가 코드를 잘 짜는 건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코드만 잘 짠다고 좋은 개발자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협업하는지, 어떤 인사이트를 가졌는지는 판단하지 못하고 단순히 코딩을 잘하는 개발자 === 좋은 개발자
로 단정 짓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어떤 채용 과정이든 구멍은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검증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검증하는 게 면접이고 채용 과정인데, 지금은 코테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라는 마인드로 전형을 진행하는 거라면, 이건 별로 좋은 전형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면접이든 과제든 코테든 정말로 자신들의 도메인에 알맞은 사람을 가려서 그것에 알맞은 사람을 뽑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자신들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로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게 지금의 채용 시장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용시장이라는 특성상 기업이 갑이 되고 구직자가 을이 됩니다. 을은 어쩔 수 없이 갑이 원하는 것들을 맞춰야 하니까 저도 그런 부분들을 열심히 준비했었지만, 거시적으로 생각할 때 현재 채용시장의 방향성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자신들이 필요한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채용하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요? 그냥 사람이 필요하다 - 사람을 뽑아야겠다 - 어떤 사람을 뽑지? - 일단 닥치고 코테
라는 입장이라면, 과연 그 회사는 구직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질까요? 반대로, 정말로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 깊게 고민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